건강정보 익스프레스

 

얼마 전 책을 보다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성격과 만성질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인데요. 함께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들고 왔습니다.

“미분화 유형은 바운더리가 흐릿하기 때문에 흔히 심리적 문제뿐 아니라 신체적 문제까지 동반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면서 내과 전문의인 게이버 메이트는 저서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에서 바운더리가 미분화된 사람들의 신체적 문제를 이렇게 묘사했다. 미분화된 유형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만성질환 특히,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아래는 이 책에 인용된 또다른 책의 내용입니다. 

자기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이런 대처방식은 자기 바운더리가 흐려지고 심리적 차원에서 자기와 비(非)자기 사이에 혼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혼동이 세포, 조직, 그리고 몸 차원에서도 뒤따른다. 자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면역세포들이 파괴되거나 무해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면역세포들이 스스로 몸 조직을 공격한다.”

 


이 책은 자아의 분화 정도에 따른 성격 유형을 셋으로 나누고, 자아의 바운더리가 희미하거나(1), 적당히 유연하거나(2), 경직된(3) 타입 각각의 특징을 구체적인 사례들 들어가며 잘 풀어냈습니다. 미분화 유형은 다시 순응형과 돌봄형, 과분화 유형은 방어형과 지배형으로 나뉩니다.
저자가 정신과 의사신데 글을 대단히 잘 쓰셨어요. 마치 별자리나 혈액형 별 성격 유형을 읽는 것처럼 흥미가 돋아서 금세 읽어지더라고요. 전문가일수록 보통 이렇게 단순화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무래도 타고난 작가신 것 같아요. 너무 칭찬만 늘어놓고 있나요? 참고로 내돈내산 리뷰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제 자신에 대한 이해만 깊어진 게 아닙니다. 글을 읽다 보면 저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이 머릿속에 하나 하나 떠오릅니다. "내가 아는 누구누구, 딱 이 유형인데!" 하며, 그 사람의 영문 모를 행동들도 조금씩 이해가 되더군요. 바운더리의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동안의 인간관계를 되짚어 보니, 무수한 사건들 사이로 일종의 패턴이 드러나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간 직장에서도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버겁다고 느끼던 저였기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하면 이 반복되는 악연(?)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요. 책 한 권 읽었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복잡한 문제들이 술술 풀려 나가진 않겠지만, 일단 제 자신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수확이었어요.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요. 어쨌든 제가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용문에서 보시는 대로 '마음 약한 사람', 이 책에 따르면 자타의 분별이 미숙한 '미분화 유형의 사람들이 겪는 신체적인 증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 대목을 읽는 순간 훅 꽂혔습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대목이죠.
만성질환, 자가면역 질환은 미분화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특징인데요.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나보다는 주로 타인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거절과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나와 너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감정의 전염도 쉽게 이루어지는 편이고요. 필요 이상 남들의 이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해 비위를 맞추는… 쉽게 말해 '져주고 마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갈등이 벌어지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 자책하는 것으로 어물쩍 마무리를 하고요. 정말 딱 제 얘기다 싶었어요.

 

“자신의 바운더리가 존중받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침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알람은 불쾌감, 불안, 짜증, 언짢음, 분노 등의 감정들로 지각된다. 이러한 감정들은 분명 신체적인 감각을 통해 전달된다. 머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열감이 느껴지거나, 어깨가 굳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분화 유형들은 그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더라도 자명종처럼 후다닥 끄고 만다. 왜 그럴까? 이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관계에서 '안 좋은 것' 또는 '해로운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이에서는 이런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돼!'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관계에서 좋지 않아!'하며 스스로 알람을 무디게 만든다. 이들은 불편함을 해소하기보다 참는 데 익숙하다. 그러한 불편함이 관계에 위험하고 방해된다는 생각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상대는 더욱더 자신의 문제를 감지하지 못한다.”

 

제 블로그에는 특히 만성적인 소화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들른다는 걸 검색 키워드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물론 백퍼센트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저 대목을 읽고 나니 문득 나를 이렇게 병들게 한 것은 결국 나의 관습적인 사고와 무신경한 행동이었다는 자각이 밀려오더군요.
흔히 마음챙김이라고 하는데요. '마음'이라고 하면 너무 감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그동안 이 분야의 도서를 의도적으로 기피해 왔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마음만 달랜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큰 지도 위에 나의 좌표를 보여 주는, 그래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나의 사고방식과 감정의 습관을 살피게 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런 성격과 질병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더 깊이 있게 진행되진 않아요.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위에서 인용된 책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에 오히려 관련 내용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이 부분에 흥미가 있는 분들은 저 책을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저는 위에서 말한 미분화 유형에 속하기 때문에 이 리뷰 또한 그쪽에 조금 치우친 감이 있는데요. 제가 소개한 건 이 책의 극히 일부 내용일 뿐입니다. 직접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풍성하면서도 아주 명료한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원인 모르게 인간관계가 삐걱대는 분들, 그리고 그로 인해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한번 권해 드리고 싶네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작은 감정까지 예민하게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잘 느끼는 것을 넘어 잘 알아야 한다.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지각(perception)이라면, 이 감정이 무엇이고 왜 느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자각(awareness), 즉 알아차림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안다는 말은 몸으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이성과 감정의 만남이며 몸과 마음의 연결이다. 바운더리가 건강하지 못한 이들은 여기에 결함이 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 것은 물론, 감정을 구분하고 분류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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